수학모음(Scrap)

평균률과 순정률

티아쌤 2012. 8. 18. 22:55

평균율과 순정률

피타고라스의 조율법은 5도 및 완전4도의 비율인 3:2 및 4:3의 비율에 기초한 조율법으로, 다음 비율(또는 이런 비율의 역수)로 현의 길이를 조율한다.

이렇게 정수의 비, 즉, 유리수의 길이를 써서 조율하는 방법을 순정률(pure temperament)이라고 통칭한다.

삼분손익법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의 순정률은 서양 음악 이론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동양음악의 기본 조율법의 하나로 기원전 7세기 경에 등장하여 피타고라스 시대보다 한참 앞서는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도 넓은 의미에서는 순정률이다. 삼분손익법이란, 삼분손일(三分損一)과 삼분익일(三分益一)을 교대로 반복하여 조율하는 방법이다. 삼분손일은 말 그대로 셋으로 나눈 후 하나를 덜어내는 것이다. 즉, 2/3에 해당한다. 삼분익일은 셋으로 나눈 후 하나만큼 더하는 것이니 4/3에 해당한다. 따라서 삼분익일과 삼분손일을 각각 한 번씩 거치면 역시 8/9의 비율이 등장하는데, 피타고라스의 조율법에 등장하는 비율(의 역수)과 일치한다.

동양음악의 기본 조율법의 하나로 기원전 7세기 경에 등장한 ‘삼분손익법’은 넓은 의미에서의 순정률이다.

기준 길이 1에 대해 삼분손익법을 적용하여 12음을 구하면, 다음 비를 얻는다.

이 중 짝수 번째, 즉, 삼분손일로 만들어진 것을 6률(陽律)이라 부르고, 홀수 번째, 즉, 삼분익일로 만들어진 것을 6려(陰呂)라 불렀으니, 천자문에도 등장하는 율려조양(律呂調陽)의 ‘율려’가 바로 이것이다. 또한 처음 다섯 음을 궁, 치, 상, 우, 각이라고도 불렀는데 (시대나 나라에 따라 이름이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를 크기 순으로 늘어놓으면 궁상각치우가 된다. 한편 이 비율(의 역수)은 피타고라스의 음계에도 모두 등장하니,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여겼던 비율은 동서양이 따로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한 정수비의 순정률

원칙적으로 정수비로 조율한 것을 모두 순정률이라 부를 수 있지만, 특히 간단한 정수비로 조율한 것만을 순정률(just intonation)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간단한 정수비로 맞출수록 일반적으로는 더 편안한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로 생각한 5:4 등의 비율(장3도라 부른다)이나 5:3의 비율(장6도)도 실제로 들어보면 협화음정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타고라스 조율법으로 맞춘 비율 81/64보다 장3도의 비율 5/4가 오히려 어울리게 들린다는 얘기다. 이 두 음정의 차이 1/64을 ‘신토닉 콤마’라 부르는데, 이 차이는 무시하기에는 조금 큰 수준이었다. 따라서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피타고라스의 방식을 탈피한 조율법이 모색되었고, 스페인의 수학자 겸 음악 이론가인 라모스(Batolome Ramos de Pareja, 1440~1522)가 고안한 체계가 [실용 음악(Musica practica)]에 남아 있다. 이론적인 음악 이론보다는 실용적인 음악을 위한 체계로 구상된 것인데, 예를 들어 7음계를 아래의 비율로 조율한 것이 대표적인 순정률이다. (물론 12음계를 만드는 방법도 있는데, 여기서는 생략한다.)

피타고라스 음률의 문제점 : 반음이 다 같은 반음이 아니야

피타고라스 조율법에 의할 경우, 인접한 반음 사이의 비를 보자. 처음 두 수의 비는 a=256/243=1.05349794… 이다. 다음 두 수의 비는 b=(9/8)/(256/243)=2187/2048=1.06787109… 로 a와 다르다. 다행히도(?) 반음은 이 두 종류밖에 나오지 않는다. (참고로 a, b의 곱은 9/8이며, a, b의 비는 피타고라스의 콤마다.) 인접한 반음 사이의 비를 차례로 늘어 쓰면 다음과 같다.

a, b, a, b, a, b, a, a, b, a, b, a

뭔가 규칙성이 흐트러진다는 것이 한눈에도 보일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콤마를 무시하고 타협한 결과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현상인데, 특히 협주를 한다거나 조옮김 등을 하려고 할 때 치명적인 불협화음을 수반하는 문제를 낳는다.

무슨 뜻인지 피타고라스 조율법으로 프렛의 간격을 매긴 기타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편의상 요즘 대부분의 기타처럼 6번 현과, 5번 현은 개방현일 때 각각 ‘미’와 ‘라’ 소리를 내도록 조율했다고 하자. 즉, 6번 현의 5번째 프렛을 누르고 낸 소리와, 5번 현의 개방현이 같은 소리를 내도록, 즉 완전4도로 조율했다고 하자는 것이다. 이제 각 현을 한 프렛씩 이동하여 6번 현의 6번째 프렛과, 5번 현의 첫 번째 프렛을 짚은 채 소리를 내면, 같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미에서 올림 미로는 a배, 라에서 올림 라로는 b배가 되기 때문이다.

순정률의 문제점

사실 이런 문제점은 순정률을 사용하는 한, 즉, 정수 비를 사용하는 한 항상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간단한 정수비를 사용한 순정률에서는 온음의 간격이 10/9과 9/8 두 가지가 혼재하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순정률을 사용할 경우 어떤 화음은 어울리지만, 어울리지 않는 화음이 필연적으로 남게 된다. 일정한 음역대에서 악기 하나만 사용한다면야 문제가 없지만, 조옮김 등을 해야 하거나 두 개 이상의 성부가 들어가는 다성음악 등의 경우, 필연적으로 문제점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를 특수 제작하여 연주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순정률이 조화로운 소리를 내기는 하나 이러한 문제점이 있으므로,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건 당연하다. 특히 16, 17세기부터 한 옥타브를 균등하게 분할하여 반음의 간격을 일정하게 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사실 수학적으로는 훨씬 이전부터 대두된 문제였다.

음악 하다 말고 수학 하기

피타고라스가 간단한 정수비를 써서 음악 이론을 만든 후, 이를 수학과 연계해 발전시켜 수준을 높인 대표적인 인물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아르키타스(Archytas of Tarentum, BC 428-347)이다. 아르키타스를 비롯한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과학(당시에는 수학)을 천문학, 기하학, 산술, 음악의 네 분야로 나누었는데, 이러한 사조는 서양에서 중세 시대까지 이어져 큰 영향을 미쳤다.

피타고라스 학파 중에서 가장 음악 연구에 헌신했던 아르키타스는 옥타브를 균등하게 분할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즉, 주어진 현의 길이를 m:n으로 분할하여, 이때 나는 소리와 원래의 소리와의 음정차, 그리고 한 옥타브 위의 소리와의 음정차가 같도록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한 것이다. 한 옥타브 위의 음정을 내려면 현의 길이를 절반으로 줄여야 하므로,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결국 정수의 비를 제곱하여 2를 만들 수 있느냐는 문제가 된다.

원래의 음정과 a지점까지의 비율이 a지점과 1/2(한 옥타브 위)의 비율과 같아야 한다.
즉, 1:a = a: 1/2 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a2=1/2이다.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2(2의 제곱근)를 유리수로 표현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되는데, 아르키타스는 이것이 불가능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피타고라스의 음률 모두로부터 √2가 유리수냐는 문제에 이르게 된 것은 흥미롭다. √2가 유리수가 아님을 발설하였던 히파수스는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살해되었다고 전하는 반면, 아르키타스는 서양 철학사에서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된다. √2가 유리수가 아님을 증명한 아르키타스의 증명법이 훗날 유클리드의 원본에 실린 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다지 확실한 근거는 없는 것 같다.

아르키타스는 옥타브를 균등하게 셋으로 분할하는 방법도 생각했다. 이번에도 수학적으로는 3√2(2의 세제곱근)를 구하는 문제가 되는데, 유명한 삼대 작도 불능 문제 중 하나인 배적 문제는 이미 이 시대에 그 싹을 보이고 있었던 셈이다. 어쨌거나 아르키타스는 3√2를 그려 내는데 성공한다! 다만 ‘아르키타스의 원기둥’이라 부르는 것을 이용했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은 도구를 이용한 작도'라며 플라톤의 지적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평균율 : 조화로움에 무리수를 두다

16세기, 17세기에 와서야 반음을 균등하게 만든 평균율(temperament)이 음악 이론 및 실제 연주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버지인 빈센초 갈릴레이는 반음 사이의 비율을 18/17=1.05882…로 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 옥타브를 균등하게 12등분하려면 반음 간격을 12√2=1.05946…로 해야 하니, 꽤 정확한 편이고 현악기의 경우, 줄의 장력의 특성 때문에 나름 장점도 있다고 한다.

(12√2)0, (12√2)1, (12√2)2, (12√2)3, (12√2)4, (12√2)5, (12√2)6, (12√2)7, (12√2)8, (12√2)9, (12√2)10, (12√2)11, (12√2)12

하지만 무리수 12√2를 누적한 비율은 한 옥타브 차를 제외하면 절대로 정수비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평균율로 조율하여 4도 위의 음이 갖는 비율 (12√2)5=1.3348…의 경우 4/3과 비슷하지만 차이가 나고, 5도 위의 (12√2)7=1.4983… 역시 3/2과 비슷하지만 차이가 난다. 다행이라면 이 정도의 차이는 사람의 귀가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평균율이 대두된 후, 프렛을 사용하는 현악기나, 피아노를 비롯한 건반 악기 등을 조율할 때 무리수 12√2의 비율을 사용하여 반음의 간격을 균일하게 만드는 것은 대세가 됐고,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미세한 차이에도 민감하거나, 평균율이 대두되기 전의 음악을 원전 연주하는 경우, 조옮김을 할 필요가 없는 경우 등에는 여전히 순정률을 많이 쓴다. 현대에는 발달한 컴퓨터를 이용하여, 조옮김을 하더라도 순정률에 의해 소리를 내도록 해주는 신디사이저 등도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