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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찬씨가 직원과 함께 연구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다.
“집합을 왜 배우는지, 학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론을 만들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수수께끼를 맞추듯,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듯 정말 흥미진진했어요.”
자신이 신나게 배운 것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꿈을 안고 94년 귀국한 그는 그러나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대학 강단에 서고 싶었지만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 데도 없었다. 오히려 영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뒤늦게 수학으로 학위를 받은 그에게 번번이 “왜 이랬다저랬다 했냐”는 비아냥이 들려왔다.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던 그는 생계를 위해 강남의 학원가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와서 학원강사를 한다는 것이 부끄러워 이력서에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내용을 기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그가 처음 맡은 강의는 고등학교 불어와 중학교 수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고3 서울대 입시반 강사가 결근을 하는 바람에 누군가 대신 수업을 맡아야 했던 것. 마침 유일하게 교무실에 앉아 있던 그에게 원장이 수업을 맡겼다. 그런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대개는 ‘이 문제는 시험에 꼭 나오니까 밑줄 쳐라, 별표 해둬라’ 하며 문제풀이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저는 어떤 문제가 시험에 나올 수밖에 없는 학문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가르쳤거든요. 예를 들면 비례식을 설명하기 위해 ‘탈레스’라는 수학자가 지팡이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거예요. 탈레스는 무슨 이유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야 했고, 어떻게 해서 모든 빛이 직선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지팡이를 이용하게 됐는지, 비례식은 왜 그런 모양으로 표현하게 됐는지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던지며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요.”
“컴퓨터 보안장치, CT촬영기기, 게놈 프로젝트 모두 수학에서 출발했어요”
그는 3개월 만에 최고 인기 강사가 됐다. 수학적 원리의 탄생 배경과 활용 목적을 설명하고, 국내외 수학 자료들에서 각 단원을 학습하는 목적에 맞는 문제들을 골라 제공하는 그의 강의는 그해 수능시험에서 다수의 문제를 적중시켰고, 급기야 ‘족집게 강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스타 강사가 된 그는 높은 수입을 올려 이듬해 바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안재찬 수학클리닉’을 열었다. 그러고는 ‘플러스 수학시리즈’ ‘길잡이 수능 수학’ ‘스코어링 수학시리즈’ 등을 집필하고, 상위권 학생들을 상대로 고난이도의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푸는 교수법으로 고수익을 올렸다.
“수학의 다양한 쓰임새를 알려주면 아이들의 꿈이 구체화될 수 있어요.”
그는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학원강사 노릇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강의가 인기를 얻자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국세청과 검찰의 집중 단속 대상이 되었고, 경쟁 학원들의 견제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사교육 현장에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왜곡된 선행학습 행태 때문이라고 한다.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고, 특목고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중고등학생용 수학 교재를 들고 다니는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서글픔을 느꼈다고. 그는 결국 98학년도 수능시험이 끝나자 “입시학원은 비뚤어진 교육현장의 단면을 나타낼 뿐 국가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학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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