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 속에서 더 큰 세상을 봅니다”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 김규환 군
“일회용 칫솔과 일반 칫솔을 얼마나 다를까?”
“직접 혈소판을 관찰할 수는 없나?”
김규환 군(19, 경기도 백신고)은 꽤 오랫동안 현미경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그 기록을 인터넷 블로그에 남겼다. 학업이 우선이라 적극 홍보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파워블로거로 선정돼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다가 마침내 ’2011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했다.
현미경을 통한 탐구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고등학생이라면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여유가 없을 텐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자택을 방문해 가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실 자기소개서 쓰는 실전연습을 시킨다는 생각으로 지원해보라고 추천했습니다. 시상식 때 알았지만, 그렇게 뛰어난 학생들이 지원하는 줄 알았으면 시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규환이의 노력을 좋게 해석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기쁩니다.”
- 세밀한 관찰이 독특한 습관인데요. 현미경과 가까워진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규환) “제가 일본에서 초등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어요. 그곳에선 배추흰나비의 성장 과정을 보기 위해 배추를 길러요. 일부러 농약을 뿌리지 않고 배추를 기르면, 알이 부화할 때까지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거든요. 그 과정을 즐겁게 진행했던 기억이 좋게 남아 있어요. 아마 그때부터 관찰하는 것을 친숙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어머니) “네, 맞아요. 일본 초등학교에선 학교 뒤 넓은 공간을 이용해서 다양한 식물을 재배했어요. 아이들이 자연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잘 준비돼 있었어요.”
- 자녀교육을 위해 일본에 건너가신 건가요?
- (아버지) “아닙니다. 원래 국내에서 건축설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IMF 이후, 경기불황이 닥치면서 차라리 힘든 시기를 이용해 공부를 더 하기로 마음먹었고,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단칸방에서 지내는 힘든 시절이었지만, 색다른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집에 도마뱀이 들어오는 일도 있었고, 주변에서 박쥐를 보기도 했습니다. 근처 숲에서 여우도 봤죠. 자연환경의 영향이 컸습니다.”
- 돌아와서 한국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수월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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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 “쉽지는 않았어요. 일본에서는 충분히 자연을 관찰하고 호기심이 생긴 다음, 이론을 배웠는데 그 과정이 꽤 즐거웠거든요. 하지만 한국에선 그런 자연스러운 도입을 생략하고 바로 이론을 가르쳐요. 저에게는 어색했어요.”
(아버지) “주변에서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학원에 보내서 선행학습을 시키는 게 어떠냐?’고 충고했습니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한국 실정을 모르는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죠.”
- 일본에서 받은 교육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 “일본에서는 제가 아이들을 돌보느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방학이면 신문을 만드는 숙제를 내주곤 했어요. 집에 참고할 만한 책이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어요. 직접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세하게 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손으로 그리고, 글씨를 쓰고 하면서 이해하는 거죠.”
- 한국에 돌아와서 받은 교육에 대한 느낌은 어땠나요?
(아버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규환이가 실망한 부분이 많습니다. 4월이면 과학의 달을 맞아서 여러 가지 행사가 열렸는데 대부분 비슷한 행사였습니다. 그림 그리기, 글짓기, 고무동력기 만들기. 아이의 손재주나 만들기 능력은 계속 성장하지만 4년 동안 계속 고무동력기를 만들고 나니 거부감이 들었나 봅니다.”
(어머니) “그리고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더욱 호기심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제한된 시간 동안 완성도 있는 고무동력기를 만들게 하려고 방학 내내 하루에 한 개씩 만들도록 연습을 시킬 때는 조금 심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김규환) “가끔 친구들이 제 현미경에 대해서 궁금해 할 때가 있어요, 제가 찍은 시료들에 대해서 물을 때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재료를 어디서 찾느냐?’라고 묻는 게 아니라 ‘어디에서 판매하느냐?’라고 물을 때는 당황스러웠어요. 저는 직접 돌아다니면서 찾는 게 자연스럽거든요.”
-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규환 군을 바라보는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버지) “사실 지금도 격려와 응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학교육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있고, 대견하고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주사전자현미경을 만드는 기업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김규환 학생의 노력에 감동했으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서 우리 현미경을 사용해도 좋다”고 하셔서 저희도 놀랐습니다.”
(어머니) “그리고 초등학교 때 가정용 현미경을 사용하면서 기록한 관찰일지를 보고 현미경 회사에서 익명으로 고가의 현미경을 무상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밝힐 수는 없지만 좋은 장비가 나오면 무료로 교체해주시기도 합니다.”
규환 군의 블로그를 처음 방문한 사람은 사진의 신선함에 놀라고, 꾸준한 노력에 감동한다. 사실 이 작은 생물도서관이 만들어지기까지 도움이 많았다. 자연과 가까워진 규환 군의 탐구정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도와준 가족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현미경일지를 작성해나가는 초등학생의 미래를 보고 현미경을 기증한 회사. 그리고 더 높은 배율의 현미경 사용을 보장해준 회사까지.
이들의 배려에는 공통된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관찰과 탐구가 갖는 힘을 알기에 우러나온 배려라는 것.
아쉬운 점이라면 탐구정신이 자라난 환경이 국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규환 군의 책꽂이에는 아직도 일본의 생물도감, 식물도감이 꽂혀 있다. 일본 서적은 그림의 세밀함과 체계적인 분류에서 타 서적보다 월등히 높은 질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규환 군처럼 일반고에 다니고 있지만, 교육과정 수준을 넘어선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안내가 부족한 실정이다.
오는 24일부터 25일까지 도봉 숲속마을에서 ‘2011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 연수가 개최된다. 각자의 분야에서 인정받은 수상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세계적 인재로 거듭나기 위한 발돋움을 시작하고, 서로 알아가는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번 수상자 연수에는 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인다. 많은 멘토와 멘티가 이어져 서로에게 발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