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의 뒷이야기, 수치예보와 슈퍼컴퓨터
수학으로 내다보는 미래
S&T FOCUS 금년 겨울에는 유난히 추웠던데다 눈도 자주 왔다. 그런가하면 여름에는 몇십 년만에 찾아오는 무더위가 계속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봄과 가을은 점점 사라지고 ‘뚜렷한 사계절’은 옛말이 됐으며 날씨 패턴도 많이 달라졌다. 날씨가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일기예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문, 방송을 통해 매일 국민에게 전달되는 일기예보. 차지하는 지면이나 방송 분량은 매우 짧은 편이지만 그 짤막한 일기예보를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기상조건을 분석하여 날씨를 예보하는 작업은 미래의 일을 최소한의 오차로 미리 알아내는 작업인 만큼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작업을 요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수학
“자연계의 모든 힘과 모든 물질의 위치를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지성을 생각해 보자. 만약 이 지성이 인식된 자료를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다면, 이 지성을 지닌 존재에게는 확실히 결정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미래도 과거와 같이 현재로 인식될 것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가 고안해 낸 무한지성, ‘라플라스의 악마’에 대한 이야기다. 라플라스는 뉴턴이 초석을 닦은 근대과학을 그 극한까지 발전시킨 프랑스의 수학자다. 뉴턴에서 라플라스로 이어지는 근대과학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결정론’이다. 만물은 인과관계로 연결되므로 처음의 상태와 그들이 변화하는 규칙만 안다면 미래의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연이 이처럼 분명한 인과관계로 연결되기에 여러 과학지식을 수학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으며 조건만 동일하면 동일한 결과를 얻어 비교적 정확하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날씨나 태풍과 같은 거대한 기상현상도 결정론적으로 해석 가능하다. 수증기와 온도, 대기의 상태, 바람 등의 정보를 정확하게 얻어내어 적절한 수학적 모델을 이용하여 분석하면 미래의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날씨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기상현상처럼 복잡한 시스템은 아주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초래하곤 한다. 게다가 날씨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속속들이 파악한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기예보란 ‘신에 대한 도전’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가히 신탁(神託)이라고 할만한 이 어려운 작업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슈퍼컴퓨터다. 날씨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간의 관계를 물리법칙으로 표현하여 계산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하나 대기의 상태 등에 적용되는 방정식은 매우 복잡하여 과거에는 수학적인 계산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던 것이 기상상태에 대한 동역학과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수학적인 날씨 예측이 실제로 가능해졌다. 그렇게 탄생한 분야가 바로 수치예보다. 최근에는 슈퍼컴퓨터의 성능 향상으로 일기예보의 상당부분에 수치예보를 이용하고 있다.
날씨는 이렇게 예보한다
날씨를 수학적으로 예측하려면 엄청난 양의 계산이 필요하다. 게다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기예보를 서비스하려면 제한된 시간 내에 결과를 산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날씨 예보에는 가장 빠른 최신의 슈퍼컴퓨터가 사용된다. 최근 기상청에서 도입하여 운영중인 슈퍼컴퓨터 3호기는 초당 76조의 연산이 가능한데, 이는 5억5천400만 명이 1년간 계산할 양에 해당한다.
저녁 9시 뉴스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저녁뉴스에 오늘 내일의 날씨와 일주일간의 주간 날씨를 제대로 제공하려면 아침 9시에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관측한 자료가 필요하다. 통신망을 타고 이 자료들이 수집되는 데 2시간 반이 걸려, 오전 11시 반이 되어야 비로소 컴퓨터가 계산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예보담당자가 자료를 해석하고 결정하는 데 다시 몇 시간이 소요되므로, 실제 컴퓨터가 계산에 할애하는 시간은 90분밖에 안 된다. 현대의 고급 수치예보모델들은 약 400만 개의 관측정보를 이용하여 초당 약 4조 번의 사칙연산을 요하므로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의 계산을 해내려면 고속 슈퍼컴퓨터가 필수적이다.
기상청에서는 슈퍼컴퓨터 3호기에 지난해 5월 도입한 영국기상청의 수치예보모델 (Unified Model)을 구동하여, 매일 두 차례씩 전 세계의 대기 움직임을 40km의 수평해상도로 10일 앞까지 예측하여 예보부서에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아시아지역에 대해서는 더욱 조밀한 12km의 해상도로 3일 앞까지 예측계산하고 있다. 즉, 서울시만 한 공기덩어리가 3일 동안 움직이는 궤적과 변화하는 양상을 미리 예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치예보모델은 당장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는 것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 시나리오와 같이 장기적인 전망도 정량적으로 계산해 낼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4차 보고서에 수록한 주요 기후센터의 지역기후전망들은 수치예보모델을 변형하여, 수 개월에서 수백 년 동안의 데이터를 반복 계산하여 얻었다.
기상청을 비롯한 주요 기후예측기관들은 지구 표면의 특성이나 해양, 극빙, 성층권 복사성질이 대기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수치예보모델에 보강하여 장기적, 전지구적 기후를 시뮬레이션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얻는 일도 중요하다. 첨단 위성자료들이 관측한 자료들이 증가하면서 수치예보정확도도 매년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천리안 위성에서 관측한 자료들도 금년 상반기 중에는 수치예보에 입력할 수 있어, 추가 성능 향상이 기대된다. 금년 하반기부터는 한반도 지역에 대해 1.5km의 고해상도로 하루 8회 24시간 예측자료를 시범적으로 산출할 계획이다. 전국 10개 레이더 관측 자료를 이용하면 강수량도 이전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상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도약을 준비중이다. 금년부터 9년간 942억원을 투자하여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하는 사업에 착수한 것. 우리의 기상과학기술이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보다 40년 이상 늦게 시작했고, 인재양성도 뒤쳐져 있었기에 기술 격차를 극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기술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재생산이 가능한 토대를 갖추기까지 충분히 기다리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만의 높은 기술력에 우수한 인적자원이 결합되면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기상예측 소프트웨어를 확보하고 보다 양질의 기상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