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기하학을 접목시킨 화가
원근법에 매료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명화 산책 흔히 그림과 수학은 별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평면에 3차원적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입체감이 필요하고 입체감은 수학적 공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림과 기하학을 완벽하게 절충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 선구자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15~1492)다.
열다섯 살에 피렌체에서 도제 생활을 하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선 피에로는 미술이론가로 활동하고 있던 레온 바티스타를 만나면서 수학에 관심을 가진다. 레온에게 막대한 영향을 받은 피에로는 빛과 색채를 사용해 공간적인 효과를 창출한 선구자가 됐으며 그가 개발한 기법은 15세기 이탈리아 미술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고 있다.
2세대 인문주의 화가의 핵심멤버였던 피에로는 원근법에 매료돼 수학자이자 기하학자로 활동했다. 그는 수학에 관한 논문 3편을 발표했는데 ‘회화의 원근법에 관하여-1474년’은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서술해 르네상스 미술과 건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다섯 개의 정다면체에 관하여-1480~1489년’은 정다면체 수학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으로 평가받고 있다.
피에로는 말년에 기하학자로만 활동하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아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에 이르러 다시 재조명돼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입체적 공간 창조 위해 명암법 사용한 ‘콘스탄티누스의 꿈’
피에로가 입체적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명암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작품이 ‘콘스탄티누스의 꿈’이다. 로마 고대사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 최초로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해 밤을 그린 작품이다. 키아로스쿠로는 한 가지 색상의 명도 차에 의해 입체감을 나타내는 기법을 말한다.
콘스탄티누스는 아버지가 죽자 황제로 추대됐지만 반대 세력들이 서로마 제국의 막센티우스를 황제로 추대해 내전이 발생한다. 내전은 6년이나 지속됐다. 312년, 콘스탄티누스는 군대를 출동시켜 이탈리아 테베레 강의 밀비우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 황제와 결전을 벌인다.
결전의 전날, 정오 무렵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하늘에서 ‘정복하리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거대한 십자가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날 밤 콘스탄티누스가 꿈을 꿨는데 낮에 하늘에서 보았던 십자가를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지고 나타나 ‘적군과의 싸움에서 보호해 줄 것이니 병사들에게 이 십자가를 나눠주라’고 당부했다.
다음 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군 휘장과 방패에 금과 보석으로 십자가를 새겨 넣어 병사들에게 나눠 줬다. 햇살에 반짝이는 십자가를 본 막센티우스는 공포에 떨어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고 전의를 상실한 그의 군대는 후퇴했다. 그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 역사상 처음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 작품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막사 안에서 잠들어 있다. 그 앞에는 경호원이 앉아 있고 군복을 입은 2명의 군인들은 창과 몽둥이를 들고 막사를 지키고 있다. 화면 왼쪽 상단의 천사는 막사를 향해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 천사의 손가락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예언을 알려주는 것을 나타낸다. 경호원들은 천사의 등장을 알지 못하지만 밤하늘의 광채가 예수 그리스도의 예시를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천사의 얼굴이 가려져 있고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는 것은 꿈의 짧은 시간을 암시한다.
피에로는 고대사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한 동의 막사만 묘사했으며 원근법을 사용해 막사의 깊이를 더했다.
그리스도의 세례 장면 신비스럽게 표현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로마를 비롯해 여러 지방에 체류한 피에로는 고향 산세폴로크에서 작업하는 것을 가장 선호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고향에서 작업한 초기작 대부분은 소실되고 없다.
피에로의 초기 작품 중에서 피렌체 회화의 영향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 받은 장면을 신비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전통적인 세례 장면 방식을 따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세례 장면에서는 예수, 세례 요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등장한다.
풀이 우거진 강기슭에서부터 흘러나온 요르단 강물 위에 예수 그리스도가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고 서 있다. 세례자 요한은 물을 붓고 있고, 날개를 활짝 편 비둘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있다.
화면 왼쪽 곧게 뻗은 나무 옆에 고대 그리스 복장과 바로크 시대의 옷을 입은 세 명의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 받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며 세례자 요한 뒤에 있는 남자는 옷을 벗고 있다.
이 작품에서 세 명의 천사는 조화를 상징하며, 옷을 벗고 있는 남자는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을 나타낸다. 또한 옷을 벗는 남자는 ‘세례자 요한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세례를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뒤에 보이는 인물들은 바리시아 사람들로 세례 요한을 비난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 있는 곧게 서 있는 나무 기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암시하고 있으며 무성한 나뭇잎은 생명을 상징한다. 화면 전면으로 점점 넓어지는 요르단 강 물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암시한다.
피에로는 신비주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성부는 그려 넣지 않고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만 묘사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