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모음(Scrap)

[스크랩] “반복적 계산은 인스턴트, 생각하는 수학은 유기농”_이종규

티아쌤 2008. 3. 19. 00:14

박영훈 나온교육연구소장이 말하는 ‘수학 체력’ 키우기

 

박영훈 나온교육연구소 소장이 올바른 수학교육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계적 풀이시켜 답 재촉 말고
사고할 시간 주고 ‘왜’라고 질문
일상 경험과 연결해 이해하도록

 

‘수학’ 하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부모들이 많다. 오로지 점수 따려고 12년 동안 죽어라 문제를 풀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수학을 ‘폐기처분’한 대다수의 부모들에게 수학은 “따분하고 어려운데다 살아가는 데 아무 쓸모도 없는 과목”일 뿐이다. 문제는 부모 세대들이 자신이 힘들었던 경험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수와 덧·뺄셈 기호가 빼곡한 학습지를, 초 단위까지 시간을 재가며 풀 것을 강요한다.

 

수학교사 출신으로 대안적인 수학교육을 모색해 온 박영훈 나온교육연구소 소장(홍익대 수학교육과 겸임교수)은 “이런 식의 반복적인 문제풀이는 아이들을 싸구려 계산기로 만드는 지름길일 뿐”이라고 말했다. 계산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시키면 어릴 때 잠깐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과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을 좋아하고, 또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 소장한테서 수학의 ‘기초 체력’을 키워 주는 방법을 들어봤다.

 

■ 생각하게 하라=“수학 공부를 하다 말고 아이들은 ‘엄마, 손목 아파서 더 못 풀겠어’라고 말합니다. 참 우습죠? 명색이 수학 공부를 한다면서 머리가 아니라 손목이 아프다니 말입니다.” 박 소장은 ‘생각하는 수학’을 유기농 음식에, 생각 없이 문제만 푸는 ‘기계적인 수학’을 인스턴트 식품에 비유한다. 인스턴트 식품이 당장은 맛있지만 몸에 해롭고, 유기농 음식은 처음에는 맛이 없지만 건강에 좋은 것처럼, 장기적으로 보면 ‘생각하는 수학’이 아이의 수학 공부에 더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생각하는 수학’을 해야 세상을 수학적으로 보는 눈이 생겨, 수학적 사고력과 수학적 상황에 대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생각하는 수학’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느림의 철학’이 필요하다. 빨리 정답을 구하라고 다그칠 게 아니라, 아이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다양한 사고의 가능성을 차단한 채 빨리 답을 구하는 방법만 가르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25+87’을 계산하는 문제가 있다고 칩시다. 아이들은 가만히 놔두면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십의 자릿수와 일의 자릿수를 따로따로 계산한 뒤, 나중에 두 수를 더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어른들은 일의 자릿수부터 받아올림해서 문제를 푸는 것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소장은 “답이 맞든 틀리든 아이의 머릿속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를 알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수학 공개수업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 대화하라=모든 교육은 대화에서 비롯된다. 수학도 예외가 아니다. 부모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제 푸는 요령을 가르치거나 개념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이다. 성급하게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하려 들지 말고, 아이가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생각을 했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들어봐야 한다. 계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 문제를 풀더라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아이가 생각을 하게 된다. 설령 아이의 생각이 부모가 알고 있는 ‘정답’과 다르더라도 ‘아,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인정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 소장은 “‘부모가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어느 학습지의 광고 카피는 옳지만, 그런 학습지에서 제시하는 ‘선생으로서 부모’ 노릇은 채점해 주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대부분의 학습지와 참고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생산적인 대화를 가로막는 단순 작업만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경험에서 출발하라=아이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추상화 과정이 생략된 채, 이미 추상화된 형태로 아이들에게 제시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왜 이런 추상적인 개념이 생겼는지, 그게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수학에서 세계를 읽어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경험은 이런 추상적인 수학을 삶과 이어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 예컨대, 동생이나 친구와 과자를 나눠 먹다 다퉈서 부모님께 혼난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다. 똑같이 나눠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나눠진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탐구하다 보면 분수의 개념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음날 가족 나들이가 예정돼 있다면 아이들은 방송의 일기예보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때 접하는 ‘비 올 확률’은 생활 속에서 백분율 개념을 익힐 수 있는 소재다. 이 밖에 마트의 할인 행사나 할인 카드 사용 등 생활 곳곳에서 백분율을 만날 수 있다. 교육과정상으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야 백분율 개념을 배우지만,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미 경험을 통해 백분율을 만나고 있는 셈이다. 박 소장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과 밀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학 개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소장은 삶과 ‘친구’되는 수학 관심…대안교과서 펴내

 

박영훈 나온교육연구소 소장은 1979~2000년 중·고교 교사로 근무할 때부터 삶과 분리된 수학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87~89년 휴직을 한 뒤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92년에는 전국 수학교사 모임인 ‘수학사랑’을 창립한 것도 ‘새로운 수학’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서였다. 박 소장이 최근 펴낸 〈새로 쓰는 초등 수학 교과서〉 시리즈는 ‘삶과 수학의 관계 복원’이라는 그의 숙원을 담고 있는 대안 교과서다.

 

이 시리즈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가 개발한 새로운 수학교육 프로그램 ‘맥락 속 수학’(Mathematics in Context)을 한국화한 교재다. ‘맥락 속 수학’은 ‘인간 활동으로서 수학’을 강조한 네덜란드의 수학자 한스 프로이덴탈의 ‘현실적인 수학교육’(Realistic Mathematics Education) 철학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우학교 등 일부 대안학교와 사립 초등학교에서 나온교육연구소가 번역한 ‘맥락 속 수학’ 교과서 〈수학으로 보는 세상-MIC〉를 교재로 쓰고 있다.

 

‘삶과 수학의 관계 복원’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새로 쓰는…〉 시리즈는 아이들이 쉽게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이야기 형식으로 제시하고, 그 안에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직접 해결하도록 구성돼 있다. 학년이 아니라 영역별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색다르다. 3~6학년 때 배우는 내용을 7개 영역으로 묶어 재구성했다. 지금까지 〈백분율〉 〈분수〉 〈소수〉 〈도형〉편이 나왔고, 〈약수와 배수〉 〈대수〉 〈확률과 통계〉는 다음달 중 출간될 예정이다. 현재 유아~초등 저학년용 교재도 개발 중이다.

 

책 맨 뒤에 부모용 지침서라 할 수 있는 ‘길잡이 책’을 별책으로 끼워 놓아, 부모들이 집에서 선생님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종규 기자
기사등록 : 2008-03-10 오후 07:05:42

출처 : 想像力에 힘을!
글쓴이 : 오래된미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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